책갈피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황순규 2020. 6. 2. 12:59
728x90

○ 2012년 10월 <남영동 1985> 시사회. 당시 새누리당 의원까지 "고문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누구도 경찰이 김근태 의장을 가둔 채 고문한 명분이 '국가보안법'이었음을, 뒤집어씌우려던 것이 '북의 지령을 받는 빨갱이' 낙인이었음은 말하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빨갱이'라는 단어는 '종북'이라는 말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 해방 이후 줄곧 '빨갱이', '종북'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혐오의 대상이었고, 가장 효과적인 제거와 축출의 수단이었다. 
 종북 낙인의 대표적인 피해자이기도 한 저자는 '그러하다'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법부가 익숙한 권리의 목록과 이미 나온 판례와 학설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제대로 포착되지 못했던 피해를 드러내는 새로운 권리 개념을 고안하는 시도에도 열려 있기를 바란다."며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해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덕분에 고리타분하고, 구닥다리같은 '종북, 빨갱이'와 현 시대의 '혐오표현'들이 한 궤에 놓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법안의 존폐 여부로만 변화를 가늠하고 있어왔고.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차별 사례에 연대를 하고 있었어도 '혐오표현'이라는 틀로 이해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 '혐오표현'이란 뭘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나 화나게 하는 표현 모두가 '혐오표현'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은 제시한다. 
 "결론을 요약하면, '역사적·구조적 연원'에 의해 형성된 다수집단이 "소수집단과 그 구성원"에 대한 "배제 또는 축축"을 주장하거나 정당화하며 "차별하거나 적대"하는 표현만을 '혐오표현'으로 규제 대상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이 표현을 규제하는 이유는, 이렇게 정의된 '혐오표현'이 헌법상 모든 기본권의 전제인 '인간의 존엄'으로부터 나오는 소수집단과 그 구성원의 '공존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데 있다.'"(p20)
 "... '혐오표현'의 핵심 문제는 소수집단과 그 구성원들의 '공존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한 사람의 평판이나 평가를 떨어뜨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공동체에서 그와 그가 속한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배제함으로써 그가 그곳에서 타인과 공존할 수 없게 하고, 이로써 그의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다."(p23)
 반대로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손쉽게 혐오표현을 해도 절대다수는 어떤 제재도 없이 혐오표현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표현을 포함한 '사상의 자유시장'이 아니라 '혐오표현을 거절하고 비판하는 표현의 자유'다고 주장한다.

○ "소수자가 '공존할 권리'를 갖는다면, 시민은 '공존의 책임'을 진다. ... 혐오표현에 부딪힐 때 침묵하지 않고 멈추라고 말하는 것이 '공존의 책임'을 진 시민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일상에 스며든 혐오표현에 휩쓸리지 않는 것 또한 필요하다.  ... 이 글의 마무리는 '피해자의 책임'이다. ... 실제의 변화 가능성은 다른 누구보다 피해자의 마음과 태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p34)
 나는 그렇지 않다(을 것)이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공존의 책임'이란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일상에서부터 혐오표현에 휩쓸리지 않을 '감수성'도, 멈추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만큼의 '노력'이 더 필요한 것으로 마음 한 켠에 갈무리해둔다. 

 



◎ 언론의 '종북' 보도는 국가기관과 정권 핵심의 '종북' 표현에 힘입어 2008년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김병철은, 종북 용어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1년 12월 21일이지만 국내 전체 언론의 사용 빈도를 보면 2001년 1건, 2006년 3건, 2007년 13건 등 2007년 이전까지는 사용 빈도가 극히 미미했는데, 2008년 들어 1월 93건, 2월 47건 등 급증세를 보여 2008년 한 해 동안 모두 208건을 기록하는 등 본격화되었다고 분석한다. 급격히 늘어난 '종북'보도는 2012년 대선에서 사회전반에 걸쳐 보수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을 이끌어냈다. (p14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