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상_log

나이 서른에 우린,

황순규 2009. 9. 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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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읊조리면, 도대체 그 서른이 오기는 올까?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느덧 제 나이가 서른이 되었더군요. 술잔을 기울이며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렴풋하게 그려보던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보건의료노조에서 일하고 있는 성택형, 영국 유학가는 규철형



그리고 그 시간이 변하면서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주말 저녁 술자리에서 만난 인연들에겐 이미 그 어렴풋했던 '서른'이란 너무나 또렷한 현실로 나타나있더군요. 2003년, 경북대 "행복교감" 총학생회를 함께 했던 우리들은 이제 누군가는 부모가 되었고, 누군가는 단체 상근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극단 단원이 되었고, 누군가는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되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참 다양한 상황에서 만났지만, 누가 '운동권' 아니랄까봐(^-^;;), 각자 위치에서 자기 몫은 다 하고 있더군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기훈형


남편 따라 영국가는 현희누나, 내 옆지기인 후관이, 그리고 나


중학교 교사인 현희누나, 극단 단원으로 활동중인 정아누나.



이날은 영국 유학을 떠나는 '동지'를 환송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참 친한 형인데, 앞으로 5년 정도는 볼 일이 없겠네요.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아쉬움이 교차하더군요. 평소에 좀 자주 봤으면 될텐데, 평소에 살면서 그렇게 보기도 쉽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두런 두런 옛 이야기를 나누며 '그땐 그랬지!'를 연발하다가,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뭐 먹고 살꼬?", "5년 뒤에 뭐하고 있겠노?"란 소리들이 절로 나오더군요.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기로 했는데, 누군가는 "공부, 그냥 한국에서 하지 뭐하로 영국까지 가노?"라며 굳이 떠나지 말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기왕 마음 먹은거 잘 하고 돌아와라"고 합니다. 가라고 하든, 가지말라고 하든 모두들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덕담'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대학시절 그 마음 잊지 않고,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과연 5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는 또 어떤 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해지더군요. 마치 대학 초년생 시절, 나이 서른에 대해 그려보듯 말입니다.
 

형 : "우린 나중에 학교 졸업하고 뭐하고 살겠노? 니는 뭐하고 싶은데?"
나 : "음... 난 열심히 뛰어다니는 활동가가 되고 싶네. 민주노총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시민단체든 '진보'적인 단체에서 활동을 꾸준하게 하고 싶네요. 형은?"
형 : "나는 공부에 욕심이 조금 나는데... 진보진영에도 '브레인'은 좀 있어야 안되나"
나 : "흐음... 뭐 형이 좀 많이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 그라면 공부 많이 해서 박사학위 따서 진보진영에 도움되는 사람이 돼서 돌아와요 ㅋㅋ"
형 : " 그라까? ㅋㅋ 일단 학교부터 졸업하고 뭐하고 사나 한 번 보자"
나 : "까이꺼, 뭐 그라입시더~ㅋㅋ"


거창한 계획은 없었지만, '포부'만으로 그냥 그렇게 얘기하던 시절을 떠올리니 입가에 웃음이 절로 머금어지더군요. 그 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었던지... 디스 플러스 한 대 피면서 나눴던 얘기들은 2009년 현재, 현실이 되었네요. '활동가'가 되겠다던 저는 지금 민주노동당 대구시당에서 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고, 공부좀 해보겠다던 선배는 국제정치를 전공으로 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곤, 이제 영국으로 유학을 가니깐 말입니다. 
 
집안 사정이 그리 넉넉치도 않고, 결혼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형수까지 같이 떠나는데.
모쪼록 돈 떨어지기 전에 '빨리' 학위 따서 돌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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