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생각_log

"새로운 다짐으로 다시, 여든부터 시작입니다."

황순규 2009. 11. 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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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민주-통일 인사 민촌(民村) 라경일 선생님 팔순연에 다녀왔습니다. 평소에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역 민주-통일 운동의 노투사님의 팔순이란 그 자체로 뜻깊은 자리가 될 것 같아 참석했습니다. 200석 가까이 자리를 준비했다는데, 많은 분들이 그 많던 자리를 다 채웠습니다. 선생님의 옛 동지들부터, 대구 민주노동당, 민주당, 진보신당, 진보연대,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지역의 진보-개혁 진영의 많은 인사들이 팔순연에 함께했습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어떻게 살아오신 분인가...궁금해서 리플렛을 펼쳐봤습니다. 한쪽 분량의 약력에 빼곡하게 선생님의 삶의 역정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음을 택할지언정 권력에 굴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약 30세까진 비교적 평탄할 삶을 사시다가, 제일모직 공채 1기로 입사하면서부터 '고난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그 후, 오늘 팔순까지 약 50년 동안의 선생님의 삶에는 한국현대사가 오롯히 담겨있었습니다.

1930 일본 나가사키현 출생
1942 나가사키현 야하다시 고등소학교 입학
1943 태평양 전쟁 총동원령으로 야마구지현에서 철도역무원으로 일함
1945 태평양전쟁 종전 후 귀국(당시 16세) 대구 동인동 정착
1947 대구 신암동 소재 대영의원에 조수로 취업
1950 한국전쟁 중 국군에 징집되어 군복무
1953 대구의과대학병원 병리실험실 보조수 근무
1957 제일모직 공채 1기 입사
1960 제일모직 노동조합 결성 주도 결성준비위원, 감찰위원장 역임
       파업주도 혐의로 해고
1961 5.16 군사쿠데타로 예비검속, 구금 후 석방
1964 부산에서 모직상사 근무
1967 한국나일론(현 코오롱그룹) 근무
1968 세칭 남조선해방전략당 조작사건으로 구속.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선고
1971 반독재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참여
1974 세칭 인민혁명당재건단체 사건으로 구속
1975 비상고등군법회의를 거쳐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1982 형 집행정지로 석방(8년 8개월 복무)
1988 민족자주평화통일대구경북회의 결성에 참여
1991 대구 범어동 광명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
1996 조국통일범민족대구경북연합 부의장 역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건으로 구속, 집행유예로 석방
2007 서울중앙지법에서 인혁당재건단체사건 재심 무죄판결
2009 과거사위원회에서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조작사건으로 진실규명 결정
현 재 민족자주평화통일 대구경북회의 상임위원/(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사)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고문/6.15공동선언실천대구경북본부 고문

"새로운 다짐으로 다시, 여든부터 시작입니다."

팔순의 나이에 "다시 시작"을 결의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축사를 하시는 한 노선배님은 우스개소리로 "팔순에 다시 시작이다...그러셨는데, 앞으로 70대 '청소년들'은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더불어 사는 세상. 통일된 세상. 그 한길을 바라보며 온갖 고초를 겪어오셨던 노선배님들. 애초에 부귀와 영화, 권력을 탐했다면, 그 한 길을 걸어오시진 못하셨을겁니다. 젊은 일꾼으로써, 이런 노선배님들의 모습에 새삼 겸손해졌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제, 활자화된 '약력'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팔순연에 참가하신 옛 동지분들의 '회고', 그리고 팔순연에서 낭송된 시를 통해 그나마 좀 더 이해하고, 가깝게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향 기
-민촌 라경일님 팔순연 축시 -

류근삼

민촌 라경일 선생님
우리들에게는
수 많은 선후배 동지들에게는

'4월에 피는 꽃'이 한 아름씩
가슴마다 피고 있어요
4월의 꽃은 아름답고
4월의 꽃은 향기가 진합니다
오늘 민촌 라경일님의 8순연에서
4월에 피는 꽃을 생각합니다
4월에 피는 꽃을 그리워합니다

사람이 연로하시면
아는 것이 많아 참 좋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하루 하루 알아낸다는 것이고
나이테 같은 연륜으로
무엇에 몰입할 수 있는지를 알고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지혜가 솟구치므로 참 좋습니다

우리들이 열망하는 꽃은
피었다 훌쩍 져버리는 꽃이 아니라
오래 오래 피어 있는 꽃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피는 꽃
그윽한 향기가
온 누리에 베어나는 꽃이랍니다

우리 모두 귀를 기우려 보세요
백두대간에 새 봄이 오고 있어요
희망 넘치는 역사의 봄이,
귀를 모우고 있으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골 골 마다 통일의 소리가 들립니다
하늘이 거대한 절망으로 땅을 덮을 때
땅 밑에서 더운 김을 뿜으며 올라오는
새싹의 기운!
자주의 깃발을 앞세운
힘찬 발걸음 소리!
제독의 탐욕은 물럿거라
세상을 지독히도 불평등하게 만드는
악마들아, 마귀들아 물럿거라

민촌 라경일 선생님!
새파랗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든이 되셨다고요?
인간 칠십 고래희라지만
그건 옛 말이고요,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요즈음은 세상이 좋아져서
백수를 사시려면 열하홉 해가 남아 있고
유비쿼터스 시대, 오래 사는 세상이라
백 이십을 채우려면 40년이 남아있지요

민촌 라경일 선생님!
한 시대를 부대끼며 같이 살아오신
주옥같은 동지시여!
많은 선후배 동지들과 함께
멋지게 무병장수, 참 삶의 꽃향기 풍기면서
하나 된 통일동산에서
손에 손 잡고
부강한 통일조국의
역군이 되어야지요.
새로운 다짐으로 다시
여든부터 시작입니다.




세상을 환히 밝힐 횃불
- 민촌 라경일 선생 팔순에 부쳐 -

양문규

살아서는 날마다 죄인이던 시절 있었다
해와 달이 바뀌어도 강산은 암흑이었다
꽃 한 송이 제대로 피지 않는
북풍한설만 혹독하게 조국을 강타하고 있었다.
그 시절 민촌 라경일 선생님
암흑천지 죄인으로 살기보다는
영원한 봄날을 꿈꾸며 조국의 횃불이 되었다
박정희 군사 독재, 무지막지한 총칼 앞에
동지들과 함께 맨 주먹으로
자유, 민주, 통일을 꿈꾸었다
거친 들판을 자유의 말처럼 휘몰아 내달렸다
그러나 어디에도 노동자의 천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없었다
쇠창살만 차갑게 빛나는 고문실과 감옥소만 있었다
10여 년 세월 햇빛 없이 생지옥 속에 살았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신 군사독재 전두환-노태우
그 서슬 푸른 사슬을 끊기 위해
죽을 힘 다해 횃불 더욱 높이 들었다
망망대해 검푸른 파도
돛단배 하나 없이 헤쳐나갔다
자유, 민주, 통일의 세상
기필코 살아생전 이루어야 한다며
팔순 노구의 몸 이끌고
민촌 나경일 선생님
오늘도 세상을 환희 밝힐 횃불 높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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