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언론 스크랩

[새내기 구의원의 지방정치 도전기⑤] 지방의원 평가, 뭘 가지고 해야 하나

황순규 2011. 8. 22. 18:18
728x90

"공원에 있는 가로등 한 20개 중에 4~5개 빼고는 불이 안 들어와."

처음 연락을 받고는 사소한 '보안등 수리' 민원쯤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알아보니 단순한 상황이 아니더군요. 도로 한쪽으로 길따라 조성된 작은 공원에 늘어선 보안등. 그런데 그냥 보안등이 아니라 '태양광'으로 충전해서 켜지게끔 된 'LED등'이더군요.
 
설치할 당시에는 시범사업으로 예산을 지원받아 설치했다는데, 지금에 와서는 유지·관리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겁니다. 하루에 4~5시간씩 햇빛을 받아야 완전충전이 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불이 잘 안 들어오는 문제가 있고, 각 배터리도 2~3년에 한 번씩은 20만~30만 원씩 들여서 교체해야 된다더군요. 당시 상황은 미리 배터리 교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방치해두고 있는 상황이었구요. 

그 동네가 제 지역구도 아니고, 전문분야도 아니었기에 오랫동안 전기관련 일을 해오셨던 그 동네 의원님에게 이 상황을 넘겨드렸습니다. 대구 전역에 걸친 태양광등 설치현황 자료까지 살펴보시고, 기본적으로 LED등을 실외에 설치하는 것이 적합한지도 따져보시더군요. 일반적인 보안등은 빛이 넓게 퍼지게끔 되어 있어서 밝기가 그리 밝지 않아도 넓은 공간을 비출 수 있는데 반해, LED등은 빛을 직선으로 쏘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은 높지만 공원을 밝히는 용도로는 부적합하다고 얘기해주시더군요.
 
무튼 민원 중에 소소한 축에 드는 '보안등 수리' 민원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공원에 LED등을 설치한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과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까지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시범사업으로 한두 개 정도 상징적으로 운영했으면 모르겠으나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전체 구간에 태양광등을 설치한 것도 문제가 되었고, 빛을 넓게 쏘지 못해서 '밝은 곳만 밝은' LED등의 적합성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지방의원 평가, '횟수'로만 계산해서 제대로 할 수 있나
 
전면 교체까지는 어렵더라도 배터리 충전이 되지 않아도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전원을 공급하자는 대안까지 제시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2~3년에 한 번씩 배터리를 바꾸느라 드는 비용(최소 400만 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 공원에 보안등이 켜지지 않는 문제도 해결하며 예산 절감 방안 및 다른 대안까지 찾게 되었으니 의정활동으로 본다면 참 좋은 사례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활동'은, 통상적인 평가의 기준으로 보면 그저 '1'로 계산될 뿐입니다. 지방의회 활동과 관련한 평가는 대부분 '조례발의', '구정질문', '자유발언'의 '횟수'로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세세한 부분은 본회의가 아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뤄지는데, 막상 상임위원회와 관련된 부분은 잘 고려되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 예산안을 승인하는 것은 본회의이지만, 그 전에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해당 상임위원회고, 그 다음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서 본회의에 상정될 예산안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죠.
 
행정사무감사의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어떤 의원이 지적한 것인가는 기록되지 않지만, 각 상임위별로 지적사항은 정리를 합니다. 어떤 정황에서, 어떤 이야기로 예산안을 심사하고 감사했는지 알아보려면 회의록을 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빼놓고 각 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구청 내 신문구독 현황을 살펴보니 대부분 보수 성향의 매체들이길래, "동네 민원을 받으면서 이 동네는 받고, 저 동네는 안 받을 수가 있냐?"는 애매한(?) 논리로 개혁 성향의 매체들도 구독 비율을 높여달라고 했던 일이라든가, 구립도서관 개관식 행사에 2천만 원이나 쓰겠다기에 "기자재 등 구입비를 2천만 원으로 책정해둔 상황에서 무슨 개관식에 2천만 원이나 책정하느냐"고 지적하고는 예산 절감을 전제로 승인해준다든가, 이런 활동들은 통상적인 평가의 '횟수'에는 들어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의회 '안'에서 활동뿐 아니라, 의회 '밖'에서의 활동도 있습니다. 도로를 넓혀야 하는데 주민동의를 받지 못해 일이 진척되지 않을 때 직접 집주인들을 만나가면서 동의서를 받아오는 의원, 금호강 인근에 운동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간이 화장실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민원에 화장실 설치 예산 확보를 위해 관련된 시청 부서까지 찾아가고 또 찾아가서 지원금을 확보하신 의원, 폭우가 쏟아지는 날 상습 침수지역 부근에 나가서 하수도를 막고 있는 낙엽을 치우시는 의원, 보도블럭이 꺼졌다는 민원에 직접 삽을 들고 나가서 고치시는 의원 등.
 


 
'소통'을 평가기준 삼는다면, 모두들 발벗고 나설 텐데
 
아무튼 기초의회, 의원에 대한 평가가 너무 단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아쉽더군요. 비판받아야 할 점은 비판받아야겠지만, 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또 그만큼 칭찬도 받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어차피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평가'를 받겠지만, 여러 활동들이 단편적인 지표 뒤에 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얼마 전 기초의회를 평가하는 라디오 토론회에 나갈 일이 있어서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을 나름 정리해봤습니다. ▲ 공약이행 ▲ 행정견제활동 ▲ 입법 활동 ▲ 주민과의 소통이라는 네 가지입니다. 저마다 자기가 잘한 일을 내세우고 싶겠지만 어느 정도 객관적인 '지표'는 존재해야 하고, 그 '지표'는 지방의회의 발전 방향과도 부합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단 생각에서 추려본 겁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 '주민과의 소통'이 중심에 놓여지길 바라봅니다. 소통은 자신의 성과를 알리는 '홍보'가 아닙니다. 조례안의 입안 과정이나 예산안 심사 과정에 주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담길 수 있게 했는가 하는 것이죠. 모르긴 몰라도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이런 부분이 주요 지표가 된다면 모두들 '소통'을 위한 노력을 몇 배는 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