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날적이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간담회 - 대구

황순규 2015. 6. 1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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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2학년 1반 조은화 학생의 아버님,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간담회가 422일째 4월 16일인 6월 11일 오후 7시, 포럼 다른대구 사무실에서 있었습니다. 그간 여러 간담회를 진행해왔었지만 미수습자 가족간담회는 대구에서는 오늘이 처음이었네요.(낮에 칠곡 지역에서 한 차례 있었습니다만)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나눠달라는 당부를 '실천'하기 위해서 나름 정리한 걸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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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있으면 (대구에서) 생존자와의 간담회가 있을거라 하더군요. 참 그래요. 같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어떤 아이는 살아서 돌아오고, 어떤 아이는 살지 못해 부모 옆으로 왔고. 어떤 가족들은 아직 9명이 세월호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4월 16일. 처음 연락받고 내려갔을 땐 다 살아있고, 구조되어있을 줄 알았습니다. 방송에서 전원구조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됐나 싶었습니다.
살아나온 아이들은 올라가기 바빴던 반면, 아직 아이들이 오지 않은 부모들은 '다른 데 구조가 되었다가 오겠지'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살아있을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삼일... 그렇게 지나고 나서야 '아... 살 수가 없는거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은화 엄마.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면 고통의 순간이 되게 짧아. 그러니깐 너무 아파하지 마"라고... 그런데 과연. 배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제가 어느 강원도 어느 지역에 갔었는데. 산이 높아서 핸드폰이 안터졌었어요. 전화 수신 내역을 지원해준다해도 확인해볼수가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무서워서. 얼마나 전화를 했을까. 혹시나 그런 흔적이 찍혀있으면 나는 어떻하지 생각이 들었어요. 확인 해보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2학년 1반. 반이 살고, 반이 희생되었습니다. 생존자 아이가 저에게 은화가 흥분하면 안된다고, 진정해야 된다고 얘기했었어요. 은화는 살아있을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400일이 넘었는데도 아직 못나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인양 발표는 했습니다. 국민 600만명이 서명해서 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만. 과연 유가족들이 원하는데로 되었나요? 시행령은 또 어떤가요.
2014년 4월 16일을 살고 있습니다. 해는 바뀌고, 하루 하루 시간은 가는데... 정부에게 할 얘기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 때는 살려달라 매달렸고. 지금은 찾아달라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내가 내 딸을 못 보는데. 세월호 속에 있는건 아는데...
작업 종료 될 때까지는 볼모 아닌 볼모가 되어서. 찾아달라 애원을 했어야 했고. 작업 종료 후에는 인양해달라고 싸우고 있습니다. 인양 발표는 했는데. 과연... 아무것도 원하는데로 되는게 없었는데. 인양은 장담할 수 있나요. 여러 약속을 안 지킨 정부가. 인양은 너희가 원하는데로 해줄께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중국은 5일만에 배를 올리죠. 상황은 다릅니다만. 금전, 상황논리는 아닐 것입니다. 의지라고 봅니다.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지금 세월호 배는 올라왔을 겁니다.

자식이 어디있는지 아는데. 그만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또 그만둘 부모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딸 찾게 도와달라고, 유가족이 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돌아서서 생각합니다. '우리 은화가 더 힘드니깐 괜찮아. 괜찮아...' 세월호 속에서 얼마나 힘들까요. 세월호 속에서 얼마나 아플까요. 얼마나 나오고 싶을까요... 미수습자 9명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세월호가 한발짝도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세월호가 올라와야 진상규명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존중받는 나라. 국민이 존중받는 나라.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는 나라여야 하는데. 정말 이 나라가. 그런 나라인건지... 수학여행을 보냈는데. 왜 1년을 넘게 이래야만 하는건지.

나 또한 이런 일을 당하리라 생각못했다는게 더 무섭습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겪을 수 있는 일.
너무 아픕니다. 숨을 쉬기 힘들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그냥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엄마가 참 못됐다. 딸이 더 힘든데' 생각하며 일어섭니다.
은화 엄마라는게 . 아빠라는게 너무 힘듭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새끼가 배속에 있는걸 뻔히 아는데. 그냥 살 수 있을까요. 대한 민국 국민이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서. 600만명 서명을 했습니다. 제일 아픈 9명의 미수습자가 있습니다. 소수이기 때문에 괜찮아. 얼마 안 남았어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모여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된겁니다. 가장 아픈 사람을 돌보지 않고. 찾아주지 않고. 해결해주지 않으면 세월호 참사는 앞으로 더 나갈 수 없습니다.

자식이 죽었는데. (분향소로) 가는 부모한테 축하한다고 말하는. 그런 말을 하면서 산 부모들이. 언제까지 이 참사의 희생양이 되어야 할까요. 분향소 치워야죠. 부모들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줘야죠. 그러려면 세월호부터 올려야 합니다. 9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제 딸입니다.
우리 딸이 2학년 1반이에요.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래 아이들이 다 왔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하는게 어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친구가 세월호 속에 있는데. 아직도 거기 있는데라는 아픔을 겪게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그 무서운데서 살아온 아이니깐.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미수습자 가족들이... 괜찮아. 데리고 와서 괜찮아. 이건 니 잘못아니야 괜찮아. 그러면서 마무리 할 수 있어야 되구요.

우리 은화가 태어났을때. IMF. 그래서 아이들이 혼자인 가족이 정말 많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내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아이들이. 죽는 꼴을 부모들이 두눈을 뜨고 봤어요. 세월호가 해결되었을 때 어떤 형태로 ( ) 나타날지 몰라요. 그것 또한 준비를 해야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부모들이 정말 아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부모들이 되어야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부모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세월호가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대접. 국민이 국민대접.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는거. 9명이 가족품으로 돌아오는거. 그래서 왜 이랬냐 묻고 싶다. 내 딸이 왜. 그렇게 오래 있어야지 됐는지. 왜 수장이 됐어야 했는지. 많은 부모들이 죽을때까지 그 자식을. 그리워하면서 살면서. 고통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근데. 딸을 안찾아 줄까봐. 못찾을까봐. 아무 말을 못합니다. 내 딸이 계속 거기에 있어야 할까봐.

미수습자.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뭍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정말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인양될때까지 끝까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정부 책임은 하나도 없이 다 업체에게 넘깁니다.
광주사태. 지하철 참사때도 그랬고. 어쩜 그렇게 변한 게 하나도 없는지.
배 좀 올려서 마무리 좀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도 싸우고 싶습니다. 멋드러지게 한판 붙고 싶습니다. 어떤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부모가 아니라. 너무 억울하고 분하거든요. 소수이기 때문에. 잊혀지고. 배제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구요. 있을 수도 없는 일 입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엄마 아빠 사랑하던 내 딸이. 세월호 속에 있습니다. 9명 미수습자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인양 좀 해달라고 외쳐주세요. 사람 좀 찾아달라고. 세월호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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