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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전집

황순규 2015. 9. 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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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전집

저자
백석 지음
출판사
실천문학사 | 2011-02-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한국시문학사의 가장 빛나는 별자리 중 하나인 [백석전집]의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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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던 것이라고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전부였지만, 문득 '문학책'좀 읽자라는 생각에 책장을 살피던 중 발견.

책 뒷부분에 해설 부분을 보니, 해방 이후 북으로 갔고, 반공의식에 가리워 실제 그 이상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해방 이전, 해방 이후, 그리고 월북이후 모든 것을 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기적인 구분들로 나뉘어진 작품들보다는 동화시 부분이 잘 와닿는 것 같다. 그나마 이해하기가 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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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해방 이전

 

<나와 나타샹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이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탸사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_해방 이후

  동화시

 

<산골총각>

 

 

어느 산골에

늙은 어미와

총각 아들 하나

가난하게 살았네.

 

집 뒤 높은 산엔

땅속도 깊이

고래 같은 기와집에

백년 묵은 오소리가

살고 있었네.

 

가난한 사람네

쌀을 빼앗고

힘 없는 사람네

옷을 빼앗아

오소리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 갔네.

 

하루는 아들 총각

밭으로 일 나가며

뜰악에 널은 오조 멍석

늙은 어미 보라 했네

 

"어머니, 어머니,

오조 멍석 잘 보세요,

뒤산 오소리가

내려올지 몰라요."

 

그러자 얼마 안 가

아니나 다를까

뒷산 오소리

앙금앙금 내려왔네.

 

오소리는 대바람에

조 멍석에 오더니

이 귀 차고

저 귀 차고

멍석을 두루루 말아

냉큼 들어

등에 지고

가려고 했네.

 

조 멍석을 지키던

늙은 그 어미

죽을 애을 다 써

소리지르며

오소리를 붙들고

멱씨름 했네.

 

그러나 아뿔사

늙은 어미 힘 없어

오소리의 뒷발에

채여서 쓰러졌네.

 

오소리는 좋아라고

오조 멍석 휘딱 지고

뒷산 제 집으로

재촉재촉 들어갔네.

 

해 저물어

일 끝내고

아들 총각

돌아왔네.

오조 멍석

간 곳 없고

늙은 어미

쓰러졌네.

 

오소리의 한 짓인 줄

아들 총각 알아채고

슬프고 분한 마음

선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을 찾아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도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ㅡ

 

"오조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덕을 칠까

죽을 쑬까

범벅할까,

 

에라 궁금한데

떡이나 치자!"

 

오소리는 오조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덧거리로 힘껄 걸어

모으로 메쳐댔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뒷발로 걸어 차서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채인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동쪽 마을

늙은 소를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늙은 소가

대답하는 말ㅡ

"바른배지게 들어

바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도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ㅡ

 

"기장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노치 지질까,

 

에라 입맛 없는데

죽이나 쑤자!"

 

오소리는 기장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바른배지개 들어

바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대가리로 받아넘겨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받긴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서쪽 마을

장수바위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장수바위

대답하는 말ㅡ

"왼배지게 들어

외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도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ㅡ

 

"찰벼 한 선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전병 지질까

 

에라 시장한데

밥이나 짓자!"

 

오소리는 찰벼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왼배지개 들어

외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이빨로 물고 닥채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물린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남쪽 마을

늙은 영감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늙은 영감

대답하는 말ㅡ

"통 배지개 들어

거꾸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도 모르고

오소리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ㅡ

 

"수수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지짐 지질까,

 

에라 배도 부른데

지집이나 지지자!"

 

오소리는 수수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통 배지개 들어

거꾸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쿵하고 곤두박혀

네 다리 쭉 펴며

피두룩 죽고 말았네

 

가난한 사람네

쌀을 빼앗고

힘 없는 사람네

옷을 빼앗아

땅속에 고래 같은

기와집 짓고,

 

잘 입고 잘 먹던

백년 묵은 오소리,

이렇게 하여

죽고 말았네,

 

그러나 아들 총각

이 산골 저 산골에

널리 널리 소문놨네ㅡ

 

백 년 묵은 오소리

둘러 메쳐 죽였으니

쌀 빼앗긴 사람

쌀 찾아가고,

옷 빼앗긴 사람

옷 찾아가라고.

 

그리고 땅속 깊이

고래 같은 기와집은

땅 위로 헐어내다

여러 채 집을 짓고

집없는 사람들께

들어 살게 하였네.

 

이리하여 어느 산골

가난한 총각 하나,

오소리 성화 받던

이 산골, 저 산골을

평안히 마음놓고

잘들 살게 하였네.

 

 

 

_해방 이후

  시

 

<동식당>

 

 

아이들 명절날처럼 좋아한다.

뜨락이 들썩 술래잡기, 숨박꼭질.

퇴 위에 재깔대는 소리, 깨득이는 소리.

 

어른들 잔칫날처럼 흥성거린다.

정주문, 큰방문 연송 여닫으며 들고 나고

정주에, 큰방에 웃음이 터진다.

 

먹고 사는 시름 없이 행복하며

그 마음들 이대도록 평안하구나.

새로운 둥지의 사랑에 취하였으매

그 마음들 이대도록 즐거웁구나.

 

아이들 바구니, 바구니 캐는 달래

다 같이 한부엌으로 들여오고,

아낙네들 아끼여 갓 헐은 김치

아수움 모르고 한식상에 올려놓는다.

 

왕가마들에 밥을 짓고 국은 끓어

하루 일 끝난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그 냄새 참으로 구수하고 은근하고 한없이 깊구나

성실한 근로의 자랑 속에... ...

 

밭 갈던 아바이, 감자 심던 어버이

최뚝에 송아지와 놀던 어린것들,

그리고 탁아소에서 돌아온 갓난것들도

둘레둘레 둘려놓인 공동 식탁위에,

한없이 아름다운 공산주의의 노을이 비낀다.





200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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