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언론 스크랩

[지방선거 이후 1년을 돌아보며] 대구 동구의회 기초의원이 본 동네 정치

황순규 2011. 6. 7. 14:10
728x90
"의원님, 헐~ 좀 갖춰 입고 다니세요"
[6·2지방선거 1년을 돌아보며 ①] 대구 동구의회 기초의원이 본 동네 정치
11.06.07 12:57 ㅣ최종 업데이트 11.06.07 12:57  황순규 (essay99)
2010년 6.2지방선거 이후 1년이 지났습니다. 6.2 지방선거는 당시 '야권의 역전승'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야권연대를 통한 '깜작 당선자'들이 대거 등장시켰습니다. 야권의 선전 속에 여당이 '소수정당'이 되어버린 지역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난 1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6.2지방선거 1주년을 맞이한 그들의 소회를 한번 들어보려 합니다. 

첫 번째로, 대구 지방의회 최초의 진보정당 소속 당선자이자 최연소 당선자인 대구 동구의회 황순규 의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 대구 동구의회 황순규 의원. '함께하는대구청년회' 소식지에 실릴 인터뷰를 하던 모습.
ⓒ 황순규
 황순규

저는 인물이나 경력 면에서 도드라지는 것이라곤 크게 없는 평범한 기초의원 중 한 명입니다. 그나마 좀 차별화되는 점을 찾아보라면, 대구라는 보수적인 곳에서 민주노동당 당적을 가진 지역구 기초의원이라는 것 정도일까요. 아, 거기에 당선 당시 만 29세(1980년생)로 '대구지역 최연소'였다는 사실 하나를 덧붙여야겠군요. '능력'이 아닌 '조건'만으로도 선거에서부터 당선에 이르기까지 '이런 후보도 있다' 하는 주목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6월 임시회에서 구정질문은 어떻게 할 것인지, 숱하게 받아둔 민원들은 어떻게 해결할지 골몰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이후 1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그 1년이란 시간 동안을 어떻게 갈무리해 볼 생각은 거의 못하고 있었네요. 그나마 <오마이뉴스>의 부탁을 통해서나마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고맙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 제일 피부로 와닿는 것은 아무래도 생활적인 부분일 것 같습니다. 선거 때부터 체중이 불기 시작해 이젠 옷으론 어떻게 살을 가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옷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청바지와 티셔츠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정장과 와이셔츠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술자리를 자주 갖다보니 운동을 한답시고 해도 체중이 줄기는커녕 늘기만 했고, '어린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정장'만 즐겨 입은 결과입니다. 

동네 술집에서 지인들과 한잔하곤 돌아서려는데 "어, 우리 동네 의원님 맞죠?"라며 민원을 얘기해주시는 분도 있고, 주말 아침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동네 마트를 다녀오는데 "의원님~ 그게 뭡니까. 아무리 그래도 좀 갖춰 입고 다니세요"라고 얘기해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시장 한가운데 있는 은행에 돈 찾으러 가는 길도 예전 같았으면 5분도 걸리지 않았을 텐데, 인사하며 다녀오면 10분, 20분은 그냥 흘러갑니다.
 
지난해 선거운동을 할 때는 동네를 다녀도 어디 편하게 발붙이고 얘기 나눌 곳도 많지 않았는데, 1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덕분에 의정보고서 돌릴 때는 정말 편하더군요. 

 

  
▲ 상임위원회 현장 방문. 맨 오른쪽이 황순규 의원.
ⓒ 황순규
 황순규

 

정책 충돌보다 힘들었던 것은 '관례'와 '관행'

 

지방선거 이후 1년의 소회를 적으려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이렇게 좀 실없는 얘기들이네요. 하지만 '정치적'인 이야기도 빼놓을 수는 없겠죠. 

동구의회 16명의 의원 중 진보정당 소속 의원은 저 혼자뿐입니다. 11명이 한나라당 소속이고 친박연합 2명, 무소속으로 2명이 계십니다만 '정책적인 공감'을 하기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례 제개정 발의를 하려면 최소 5명의 '서명'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뭘 할 수 있겠냐"는 얘기도 나올 법한 상황입니다만, 꼭 그렇지는 않더군요. 정당의 정책, 정치적 견해보다는 관례, 예산, 지역 같은 개념들이 더 우선시되는 것 같았습니다. 

국회 관련 뉴스를 보면 반대토론과 반대표결이 익숙한데, 지방의회 본회의에서는 이런 풍경이 낯선 풍경이랍니다.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을 하겠다"는 얘기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상황이 상상이 되십니까?
 
SSM(기업형 슈퍼마켓) 관련 조례안 심사 때의 일이었습니다. 내용이 일부 수정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저로써는 부족하다 느꼈고, 응당 반대토론, 반대표결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상임위 의결을 거친 안에 대해서는 상임위를 존중해서 본회의에서는 만장일치 가결하는 것"이라는 '관례'가 등장합니다. 조율 끝에 SSM 관련 조례안은 더 수정되어 다음 회기에 처리되었고, 부족한 내용은 '결의문'을 채택해 덧붙이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결국 관례는 그대로고, 내용적으로 절충된 것뿐입니다. 구정질문을 하는데 '일괄질문 일괄답변' 하는 것도 관례, '교황식 의장선출' 방식도 관례입니다. 이와 같은 관례에 조금 무덤덤해지니 나머지는 오히려 편하(?)더군요. 주요 공약이었던 작은도서관 건립, 영유아 국가필수예방접종 같은 정책이 쉽게 본회의에서 가결됐고, 문화체육회관 이용 시 장애인 활동보조인에 대한 할인혜택도 명시하는 조례개정안도 무난하게 통과되었습니다.
 
  
▲ 의무급식 촉구 기자회견.
ⓒ 황순규
 의무급식

 

"의원님, 우리 식당에 손님 좀 오게 해주세요"

 

의회 내 활동과 관련해서는 이런 관례라는 것이 어려운 점이었다면, 의회 밖 활동에 있어서는 민원(혹은 청탁)과 관련된 '관행'들이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안되는 게 어딨어?"라는 건데요,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택시 운전하면서 하루에 얼마 번다고. 3천 원짜리 기사식당 밥 먹고 나왔는데 주차딱지 끊는 건 너무하지 않냐? 점심시간만이라도 단속을 느슨하게 해달라"는 정도면 어떻게 이해를 구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수급자가 되도록 힘써달라"에서부터 "근처 공사장 인부들이 식당을 바꿔서 어렵다. 다시 우리 식당으로 오게끔 힘써달라"에까지 이르러서는 도무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마 여지껏 이런 방법으로 어떻게든 해결해왔던 '경험'이 있었기에 아직까지 이런 부탁이 있는 것일 테죠. 부당하게 권위와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기에 "안됩니다"라고 대답합니다만, "의원이 그것도 못하나?"라는 얘기 앞에서는 솔직히 '아우... 어떻게 한 번 해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처음 의정활동을 시작할 즈음에는 "공약을 잘 지킬 수 있을까?", "혼자서 잘 할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는데, 현실에서 부딪힌 벽은 오히려 '관례'와 '관행'이라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 진보적 지방자치, 관례와 관행 개선 등 어디에서부터 변화가 우선인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엇이 우선이다'라고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입니다.
 
  
▲ 동네 청소.
ⓒ 황순규
 황순규

 

의욕만 넘치던 1년... "조금씩 변하기는 했구나"
 
당선증 수여식이 있었던 지난해 6월 4일 "한자투성이 '의원카드'와 '당선증'"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블로그에 꾸준히 남긴 글이 90여 편 정도 됩니다.
 
한자로 되어 있던 의원 명패가 한글로 바뀌고, 구청 건물 청소하시는 분들의 휴게시설 환경이 개선되었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지는 못했지만, 200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받은 인터넷 설문만으로 주민참여예산을 하고 있다고 떠벌리던 소리는 쑥 들어갔습니다. 과학고등학교 유치를 위해 120억 원에 이르는 공사비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편중된 교육경비 지원의 대안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글을 남길 때는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조금씩 변하기는 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의 의욕은 "하나부터 열까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였는데, 지금의 현실을 보니 어떤 것은 열에 여섯까진 했고, 어떤 것은 여덟까지 하고 있습니다. 
 
1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저에게 주어진 나머지 4년의 시간 동안 얼마만 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다만 중앙정치에 밀려, '해외연수'나 '의정비 문제'가 아니고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일도 없는 지방정치 이야기를 나눠가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속도와 폭은 더 빠르고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가능성'에 묵직하게 무게를 두고 오늘도 머리를 싸맵니다!


2010. 6. 2. 황순규
*** 이글은 오마이뉴스로도 게재되었습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