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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황순규 2013. 2. 2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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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최장집

2013년 1월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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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시민권이 노사 관계와 정당 체제에서 취약해질 때 그것의 부정적 효과는 사회 전반의 공동체적 결속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 노동이 배제되면 노동자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주요 이익 모두가 배제된다는 것,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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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인간 행위의 급진성을 불러오는 감정형태는 앞의 것, 즉 감정이입이다. 현실의 삶에 기초하지 않은 학생운동의 전통이 정치 행위나 사회운동을 추동하는 힘으로 과도하게 작용할 때, 진보의 행동 정향도 그런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런 정조와 감정은, 베버의 개념을 빌려 말하면, 강한 신념 윤리를 격발하고 추동하는 반면,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책임 윤리의 부재 내지는 약화를 가져온다. 사실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이 어떤 정책을 필요로 하는지의 문제는 그들이 처한 조건을 직접 대면할 때 상당 정도는 저절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연히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구체성을 담아내는 노력은 등한시되었다. 이것 말고 한국 진보정당의 몰락 내지 주변화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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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도 여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부자들에겐 언제나 충격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남자의 평일 근로시간이 15시간이었다. 아이들도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게 보통이었고 어른만큼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시간이 약간 긴 것 같다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제넘게 제의했을 때 되돌아온 대답은, 일이 어른들에겐 술을 덜 먹게 하고 아이들에겐 못된 장난을 덜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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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부자들에겐 충격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여가가 주어지면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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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런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 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 '버트런드 러셀, 송은경 옮김,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2005), 22-24,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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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 장위동 봉제 공장에서 중
... 봉제 공장이 밀집한 이 지역에서 정당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뷰에서도 그들은 선거철을 제외하고는 평상시에 정치인들이 공장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정당과 정치인들도 이들과 의사소통이나 접촉을 시도하지 않는다.
전국적인 정당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지역구의 정치인 차원에서도 지역구 내에 있는 이들 사회경제적 인구 집단의 실태를 조사하고,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은, 정치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 정당의 사회적 기반없이 민주정치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활동은 선거 관련 법률들과 충돌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지역 유권자 대중과 항상적인 접촉을 못하게 하는 것이 현 선거 관련 법률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법과 제도들이 정치 개혁의 이름으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은 실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장위동 봉제 공장은 한국 민주주의 결핍된 조건, 나아가 한국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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