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상_log

태백산, 겨울 산행의 첫맛을 보다.

황순규 2010. 1. 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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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썬 첫 겨울 산행이었는데. 솔직히 처음에 가자고 했을 땐,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등산복도 없고, 신발도 없는데... 일년에 몇 번 갈까 말까한 산행 때문에 장비를 다 사기도 그렇고... 어디서 빌리기도 그렇고... 여튼 귀찮은 생각이 앞서더군요.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제 옆지기가 가만히 있질 않더군요. 이미 대학시절, 지인들과 여행을 통해 태백산 눈꽃을 보고 온 사람이기에. 고생을 하긴 했었지만, 눈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무/조/건' 가자고 하더군요. 다른 일 같았으면 집에 좀 쉬면 안될까?란 소리도 했을 법 한데 말입니다. 

부족한 장비는 싸게, 최소한으로만 준비했습니다. 내복을 입고 청바지를 입었었는데,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니 추위를 느끼기는 매 한가지더군요. 아이젠과 장갑, 그리고 제 등산화(3만원짜리 ^-^;;)만 이번 등산을 위해 구입했는데, 다음에 갈 때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등산바지는 꼭 장만해야겠더군요.  



먼길을 나서야 하기에, 새벽 5시 30분 집결 시간에 맞춰 동부정류장 인근으로 나갔습니다. 오늘의 산행은 운수노동자협의회와 민주노동당 대구 동구위원회가 함께 준비했던 산행이었는데, 실제 준비는 운수노동자협의회에서 다 하셨고, 나머지 젊은 당원들은 얹혀서 다녀온 셈입니다. 시외버스 운전을 업으로 삼고 계신 운수노협 분들 덕에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편할 수 밖에 없었고. 푸짐하게 준비해오신 음식들로 배고플 틈도 없었답니다. 

대구를 벗어나 한 참을 달려. 태백산 인근에 도착해서 준비해온 아침을 먹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추위'가 엄습하더군요. 그렇잖아도 내리기 전에 승합차 유리에 서린 김이 얼고있는 것 같아 보이더니, 직번 내려서 느껴본 '추위'는 장난이 아니더군요.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데도, 차 밖에서 한 술 뜨고 있노라니 손이 떨리더군요. 

찬바람을 덜 맞기 위해 마스크에 모자를 쓰다보니,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더군요.^^;;


든든하게 속을 채우곤, 장난 아닌 추위에 옷깃을 더 단단하게 여미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코스는 유일사 방면으로 올라서, 문수봉을 넘어 석탄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코스였습니다.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얼음과 눈이 쌓인 길을 걷게 되더군요. 아이젠이란 녀석을 처음 착용해봤는데, 느낌이 재미있더군요. 눈과 얼음에 아이젠이 단단히 고정되는 듯한 느낌도 재미있었고, 밝히는 소리도 뽀드득 뽀드득 뚜렷하게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단단히 다져진 눈길이나, 얼음길을 걸을 땐, 일부러 아이젠을 깊숙이 박아넣고 싶어 힘주어 걷곤 했습니다. 

유일사 쉼터에서 뒷사람들을 기다리며 한 컷을 남긴 옆지기. "빨간볼"이란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빨간볼... ㅎ


넓은 길을 지나 천제단 방면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코스로 접어드니, 길이 갑작스레 좁아지더군요. 유일사 쉼터에서 잠시 뒤에서 오고 있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천제단 방면으로 향하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서 줄을 서서 올라가고 있더군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줄이 줄어들기보단, 아예 뒤로 늘어서게 되더군요. 
많은 사람들 틈에서,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바닥만 보고 걷고 있었는데 어느덧 정상이 가까워져 오더군요. 생각보단 오르막이 힘들진 않았던 것 같네요. 그렇지 않았음 중간에 몇 번이나 쉬어야 했을텐데 말입니다. 원래는 올라가는 길에, 사진도 찍고 트위터에 올리고 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오르다보니 행동에 옮기기 쉽지 않더군요. 아마 추위에 장갑벗기 귀찮았던게 제일 큰 원인인 것 같네요. 

멋진 사진들은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왔던 송영우 선배가 찍은 거랍니다. ^^


한 호흡 한 호흡 할 때마다 가슴 깊숙하게 파고드는 찬공기. 뽀드득 뽀드득 끊임없이 밟히는 눈. 
"춥다"고 느껴지면서도 "시원하다", "후련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어느덧 정상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니 시원하다, 후련하다는 느낌만 남고 "춥다"는 느낌은 어느덧 저 멀리 가있더군요. 비록 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지 못해서 그 유명한 “눈꽃”은 구경도 못했지만 그 아쉬움은 다음에 채울수 밖에요. 

오늘부터 노트북 배경화면에 자리한 사진입니다. 한 쌍의 부부 모습이 이쁘죠? ^^

'으라찻차!'하는 모습을 찍으려했는데... 타이밍이 살짝 빗나갔네요.^^;;

'아자~!'

먼저 정상에 오른 사람들만의 여유.


정상에서 사람구경, 풍경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곤, 바람이 덜 부는 곳을 찾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들을 꺼내놓긴 했는데, 물은 얼기 직전이요, 밥과 반찬은 이미 굳어있더군요. 그러나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했었기에, 보온통을 꺼내 따뜻한 물로 컵라면을 데우곤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역시, 산행할 땐 간단하게 김치, 밥, 컵라면 챙겨가는게 제일 좋은 것 같네요. 

문수봉 정상.


정상을 오를 때까진 쌩쌩했는데, 점심 먹고 후식으로 커피 한잔까지 곁들이고 나니 '노곤~'한 느낌이 몰려오더군요. 하산길로 접어들고 봉우리 2개를 더 넘었는데, 정상을 오를 때 보다, 이 봉우리 2개를 넘는게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문수봉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네요. 정상이 온통 바위로 되어있던데, 시야를 가리는 게 없으니 풍광은 정말 시원하게 좋았습니다. 


하산길,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힘 주어 걷다보니 다리가 엄청 땡기더군요. 한참을 걸어 올라갔던만큼, 한참을 걸어내려오니 얼음동산, 석탄박물관이 나오더군요. 평소 같았으면 사진찍느라 바빳을텐데, 오늘은 그럴 생각보단 빨리 쉬고싶단 생각이 앞서더군요. 


대구 도착해서, 북어콩나물해장국으로 마무리~. 3,000원이란 착한 가격에 맛도 착하더군요. ^-^


돌아오는 길. 족발을 안주로 인삼주 한 잔 마시니 온 몸에 '짜르르~'한 기운이 퍼지더군요. 산에 오르면서 못다한 얘기들, 오늘 다녀온 소감을 얘기해가며, 인삼주 1~2잔에, 소주 1~2잔 마시니, 딱 기분좋게 잠들 정도의 취기가 오르더군요. 

새벽에 출발해서, 밤늦게 도착했고. 다리는 묵직하고 몸은 피곤했지만. 첫 겨울 산행의 '맛'은 제대로 보고 온 것 같습니다. 아마 돌아오는 겨울에도 어느 산이든 찾아가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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